제5부 · 한국의 명품 주자
14장
유물의 정밀 고증과 서사적 재정의
1. 국보 제167호 ‘청자 인물형 주자(靑磁 人物形 注子)’
- 지정 번호 : 국보 제167호 (1974년 7월 9일 지정)
- 시 대 : 고려시대 (13세기)
- 소 장 처 : 국립중앙박물관
- 출 토 지 : 1971년 대구직할시 서구 비산동 과수원 (발굴 조사 출토)
[조형적 사양 및 구조]
| 분류항목 | 세부 도상학적 및 구조적 특징 |
|---|---|
| 상형(象形) 구조 | 운형 대좌(雲形臺座) 위 가부좌를 튼 도선(道仙)의 형상 |
| 위례적 지향성 |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천도(天桃) 쟁반을 수봉(受奉)한 자세 |
| 유체 역학 설계 | 관(冠) 전면의 입구(주입구) 및 천도 끝부분의 주구(注口) |
| 시유(施釉) 상태 | 전면에 시유된 은은하고 투명한 고려 고유의 비색(翡色) |
Ⅰ. 형태 및 구조적 특징 : 도교적 도상(圖像)과 역학적 반전
머리에 높은 관(건)을 쓰고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도선(신선)이 구름 모양의 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안착한 형상이다. 두 손으로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천도복숭아 쟁반을 공손히 받들어 올리고 있다.
이 기물의 독창성은 외형의 조각적 심미성과 내부의 기능성이 일치를 이루는 구조적 반전에 있다. 인물이 착용한 관의 전면을 열어 유체(물 또는 차)를 채우고, 도사가 내민 복숭아의 선단(부리)을 통해 액체가 적하(滴下)되도록 설계된 정교한 실용 주자다. 기물 전면에는 고려청자 전성기의 투명하고 은은한 비색 유약이 고르게 시유되어 심미적 깊이를 더한다.
Ⅱ. 예술성 및 공예 기법 : 미시적 조형과 퇴화(堆花)의 미학
의복에 표현된 자연스러운 포문(주름)의 선조, 손톱의 미세한 굴곡, 그리고 관 위에 살포시 안착한 작은 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장인의 치열한 미시적 조각법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백토(白土)와 흑토를 점처럼 찍거나 발라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퇴화(堆花) 기법을 장식적 문법으로 채택하여, 도선의 의복에 입체적인 시각적 농도를 부여했다. 이는 당대 고려가 보유했던 최고 수준의 도자 성형 및 번조(燔造) 기술의 결정체다.
Ⅲ. 역사적·학술적 가치 : 출토 맥락의 명확성과 해학적 세계관
대다수의 화려한 고려청자가 도굴을 통해 유통되어 고고학적 출토 맥락을 상실한 반면, 이 주자는 1971년 대구 비산동의 과수원 지층에서 온전한 매납 상태로 정식 발굴되었다. 이 명확한 출토 맥락은 고려 중기 지방 사회의 물질문화 수준과 중앙 관요 기물의 유통 경로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극히 드문 학술적 지표다.
단순한 불교적 의기(儀器)의 엄숙함을 넘어, 고려인들이 지향하던 도교적 신선 세계와 삶을 관조하던 해학적·자유주의적 정신세계를 삼차원의 사물로 승화시킨 독보적인 마스터피스로 평가받는다.
복숭아를 건네는 장인의 마음, 비색에 끓는 시간
고려청자의 미학이 매병(梅甽)의 수려한 곡선에만 머문다는 세간의 인식은 사물의 외형만을 훑는 일차적 시선에 불과하다. 박물관의 쇼케이스 내부에서 묵묵히 관람객을 응시하는 국보 제167호 ‘청자 인물형 주자’는 고려인이 도달했던 미학적 상상력과 공예 철학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료다. 화려한 유물들의 그늘에 가려 대중적 조명을 덜 받았을지언정, 기물에 내재된 학술적 가치와 공예 기술의 밀도는 단연 독보적이다.
이 기물은 사변적인 장식품이나 단순한 액체 저장 용기가 아니다. 높은 관을 쓰고 도포를 단정히 차려입은 도선(道仙) 한 명이 구름 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안착하여,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천도복숭아 쟁반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들어 올린 형상이다. 이 고결한 사위(사위) 속에는 관(冠)의 전면을 통해 액체를 받아들이고, 손끝에 쥔 복숭아의 선단(부리)으로 온기를 흘려보내는 유체역학적 설계가 완벽하게 복합되어 있다. 단순한 실용품을 넘어 고려인들이 지향하던 도교적 신선 세계와 삶을 관조하던 해학적 정신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존한 사물 문명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장인의 집요한 시선은 미시적인 디테일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도포 가득 흐르는 자연스러운 주름의 선조, 손톱의 미세한 굴곡, 그리고 관 위에 살포시 안착한 작은 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백토(白土)를 점처럼 찍어 문양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퇴화(堆花) 기법의 정수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났다. 특히 대다수의 고려청자가 도굴을 통해 유통되어 고고학적 출토 맥락을 상실한 반면, 이 주자는 1971년 대구의 한 과수원 지층에서 온전한 매납 상태로 정식 발굴되었다. 이는 고려 중기 지방 사회의 물질문화 수준과 기물의 유통 경로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귀중한 학술적 지표로 빛난다.
수백 년 전, 고려의 한 장인이 사물의 부리 끝에 새겨 넣은 천도의 형상은 귀빈의 장수와 평안을 기원하던 이타적 환대와 배려의 지문이다. 그 따뜻한 염원과 눈부신 비색의 예술혼은 오늘날 파편화된 현대인에게 사물과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소통의 방식을 나직하게 역설한다. 이 신비로운 도사의 손끝에 서린 진심을 해독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박제된 유물의 무덤을 넘어 문명의 온전한 새벽을 마주하게 된다.
해외 소재 한국의 명품 주자(注子) : 야금(冶金) 공예의 정수
2. 은제도금연화형주자 및 승반(銀製鍍金蓮花形注子ㆍ承盤)
- 소 장 처 : 미국 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 시 대 : 고려시대(12세기 전반)
- 사 양 : 높이 34.3㎝(은제, 국소적 도금)
[조형적 사양 및 구조]
| 분류항목 | 세부 야금학적 및 구조적 특징 |
|---|---|
| 몸체(胴體) 조형 | 24조(條)의 죽절문(竹節文·대나무 줄기)을 두른 반구형 골격 |
| 구연부 및 뉴 | 여러 겹의 중첩된 연화(蓮花) 뚜껑 및 봉황(鳳凰) 형상의 꼭지 |
| 기능성 의례 기물 | 대나무 죽순을 형상화한 유려한 선조의 주구(注口·부리) |
| 보존 상태 | 기물 하단을 받치는 화형(花形)의 승반(承盤·받침)까지 완비 |
Ⅰ. 형태적 완성도와 조형의 유기성 : 죽절(竹節)과 연화(蓮花)의 조화
고려 공예의 미학은 조선의 담백함과 대조를 이루며, 화려함과 세련미를 극치로 끌어올린 귀족적 정체성에 그 뿌리를 둔다. 그 정점이자 고려 금속공예 기술의 집약체가 바로 이 은제도금연화형주자다.
은을 주재료로 삼고 국소적으로 금도금을 가미한 이 주자는 긴 주구(注口ㆍ부리)가 달린 반구형의 몸체, 중첩된 연화형 뚜껑, 그리고 봉황으로 장식한 뉴(紐ㆍ뚜껑 꼭지)로 긴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몸체 하단을 연화 양식으로 받쳐주는 화형(花形)의 승반(承盤)이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고고학적 가치를 더한다.
이 기물이 동시대의 다른 유물과 구별되는 심미적 독창성은 몸체 외면을 24줄의 대나무 줄기(죽절) 형태로 구획한 참신한 조형감에 있다. 장인은 분할된 줄기마다 정교한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을 음각했으며, 상하단에도 당초문을 조각한 뒤 그 내벽에만 정밀하게 도금을 입힘으로써 시각적 입체감과 화려함의 극치를 완성했다.
몸체 중앙의 높은 구연(口緣) 위를 이중의 연꽃 뚜껑이 밀착하여 덮고 있으며, 상부에는 날개를 접고 꼬리를 높이 세운 봉황이 대좌 위에 안착하여 공간의 장엄함을 연출한다. 액체를 흘리는 주구는 죽순의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하여 상향으로 길게 솟아있고, 반대편에는 네 줄의 죽절로 직조된 손잡이가 동체 상부와 유려한 곡선으로 결합되어 있다.
Ⅱ. 금속공예 기술의 총화 : 중국 사료와의 변증법적 대조
본 기물은 중국 사천성(四川省) 팽주(彭州)에서 출토된 남송(南宋)의 은제 주자와 조형적 사양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한때 대륙 유래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스턴미술관 소장품은 남송의 유물에 비해 선조의 흐름이 한층 유려하고, 문양 표현의 자신감과 구조적 균형미에서 압도적인 탁월성을 보인다.
안에서 밖으로 금속을 두들겨 입체적인 볼륨을 형성하는 타출(打出) 공예의 장식성이 연꽃과 봉황의 조형 위에 한껏 발휘되었으며, 음각과 양각을 엄격하게 혼용한 조금(彫金) 기법, 그리고 세부의 가시성을 극대화한 국소적 도금 기술에 이르기까지 당대 동아시아가 보유했던 야금 공학의 최정점 기술이 고스란히 이 한 점에 수록되어 있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세계 금속공예사상 가장 미려한 주자(注子)라는 명제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Ⅲ. 유산의 역사적 궤적과 비평적 교훈 : 사물이 던지는 침묵의 메시지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1935년 개인 펀드를 통해 이 기물을 영입한 과정의 구체적인 전말은 명확하지 않으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격동기 속에서 한반도 밖으로 유출되었음은 자명하다. 유물의 천문학적인 상업적 가치(보험가액 400만 달러 상당)를 넘어, 오랜 유랑 끝에 고국에 잠시 귀환하여 전시되었던 이 은제 주자는 소리 없는 웅변으로 우리에게 묵직한 교훈을 건넨다.
한번 주권자의 손을 떠난 문화유산이 다시 온전한 제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기나긴 시간의 유예와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사물은 자신의 일그러지지 않은 고결한 형상을 통해 민족의 역사를 냉철하게 역설하고 있다.
여주 하동 유적 발굴 : 지정학적 물류 네트워크와 은제 기물의 물질사
3. 고려시대 ‘은제금도금 주자(注子) 및 승반(承盤)’과 은제 일괄 유물
- 발굴 유적 : 경기 여주시 하동 190-1번지 일원 (‘여주행복스테이션’ 건립 사업 부지 유적)
- 조사 기관 : 한양문화유산연구원
- 시 대 : 고려시대(12세기 추정)
- 출토 맥락 : 고려시대 문화층 내 매납유구(埋納遺構) 2기, 대형 도기(陶器) 옹기 내부 안치
[출토 유물 정량 분석 및 사양]
| 유물 명칭 | 정량적 수량 및 재질 분석 특징 |
|---|---|
| 은제금도금 주자 | 1점, 성분 분석 결과 순도 97% 이상의 고순도 은(금도금) |
| 은제금도금 승반 | 1점, 주자를 받치는 받침 구조, 고순도 은 |
| 은제반구형병 | 11점, 입구 측면에 명문(銘文) 음각 표기 |
| 은제완(사발) | 다수, 대형 도기 내부에 일괄 매납된 상태로 보존 |
Ⅰ. 고고학적 출토 맥락과 규모의 독보성 : 지층에서 솟아오른 국내 최대의 은빛 사료
경기 여주시 하동 유적의 고려시대 문화층 매납유구 2기에서 출토된 ‘은제금도금 주자와 승반’을 비롯한 일괄 은제 공예품은 한국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의 지형을 뒤흔든 결정적 성과다. 출처가 불분명한 도굴품이나 전래품(傳世品)과 달리, 정식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통해 출토 지층과 맥락이 명확히 고증된 은제금도금 주전자는 한국 역사상 이번이 최초다.
유물들은 대형 도기 항아리 내부에 정교하게 안치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성분 분석 결과 순도 97% 이상의 고순도 은으로 주조되었음이 실증되었다. 도기 내부에서 다량의 은제 기물이 일괄 확인된 최초의 사례이자, 단일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유물의 수량으로도 국내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물질문화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Ⅱ. 형태학적 비교와 명문의 가치 : 글로벌 양식과 미시사적 고증
이번에 발굴된 주자와 승반은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품 및 중국 남송(南宋)대 은제 주자와 조형적 사양이 매우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12세기 고려 최전성기의 야금(冶金) 공예 기술이 당대 최첨단의 국제적 양식과 긴밀히 동기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물증이다.
특히 함께 출토된 은제반구형병 11점의 입구 측면에는 제작자 또는 공헌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명문(銘文)이 명확히 음각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유물의 감상을 넘어 사물의 생산 주체와 소유의 역정을 문자학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미시사적 가치를 지닌다. 사물 표면에 새겨진 활자의 지문은 고려 지배층이 향유하던 고도의 차·술 문화와 물품 봉헌의 의례 구조를 해부하는 핵심 단서다.
Ⅲ. 지정학적 공간 분석과 역사적 당위성 : 남한강 수운의 혈류와 상생의 거점
유적이 위치한 공간은 남한강 남안(南岸)에 접해 있으며, 조선시대 여주 관아 권역과 긴밀히 인접해 있다. 조사단은 인근의 보물 ‘여주 하리 삼층석탑’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불교 의례용 성물(聖物) 매납이거나, 강가 나루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강 수운 물류 시설의 자본 축적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남한강 물길의 요충지에서 소비되고 묻힌 이 최고급 주전자는 여주가 과거 거대한 상업 네트워크의 혈류이자, 중앙의 세련된 문화 자산이 지방으로 유입·확산되던 지정학적 중심지였음을 실증한다. 땅속의 어둠을 버텨내고 온전한 원형으로 귀환한 12세기의 은빛 예술품은, 박제된 과거의 기록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물질문화사 전면에 정립해야 할 독점적인 역사적 자부심이자 환대와 포용의 강력한 물리적 증거다.
『케틀뮤지엄 도록』(2026)에서 옮겨 실었습니다.